📚책과 '나'의 이야기

2022. 6. 20.

📚책과 '나'의 이야기

구독자님 좋은 아침이에요!

열 한 번째 <별별레터>입니다
오늘도 특별 게스트를 준비했어요!

☕️아가 SSUL📚
윤미경 대표_내가 나의 주체가 된다는 것
헤이북스 출판사 윤미경 대표와의
특별한 '책'과 '나'의 이야기

📡아가 TREND📡
오늘의 아가 소식
요즘 아름다운가게는
OO와 OO로 가득해요

이 메일이 잘 안보이시나요?

내가 나의 주체가 된다는 것

by 윤미경

구독자님은 종이책 vs 전자북 어느쪽이세요? 🤔

출퇴근 시간같은 짜투리 시간에 쉽게 읽을 수 있는 전자북이 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저는 아날로그 감성인 '종이책'이 더 마음이 가더라고요. 서점에 가서 직접 읽을 책을 고르는 재미도 있고, 읽을 때마다 마음을 안정 시키는 종이 냄새도 좋아서요.

물론, 핸드폰만 꺼내서 언제든 볼 수 있는 전자북과 달리 책 표지를 열기까지 약간의 의지와 성실함이 필요한 종이책이지만💦, 그 과정 안에서 나를 발견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오늘은 윤미경 대표님과 함께 '책'과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볼까 합니다.

❓ 게스트 소개 : 윤미경

1인 출판사 '헤이북스'의 대표
홍보대행사를 접고 1인 출판사를 시작해<한국 자본주의>, <나는 매일 엄마와 밥을 먹는다> 등
장르보다 독자들이 답을 고민하게 만드는 내용의 책을 출간하며, 모두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정작 사회는 움직이지 않는 이슈들을 다루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가 종이책을 읽는 이유

월급날마다 서점에 가서 한 꾸러미의 책을 사는 것이 참 좋았다. 책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포스트잇을 보면 배가 불렀고, 오래전에 읽은 책의 누런 메모를 보며 그때를 추억하는 맛은 정말 좋았다. 출판사를 시작한 것은 당연한 수순 같은 거였다. 그런데 요즘은 퇴근한 후 멍하니 TV 앞에 앉아 있게 되는 일이 많다. 많은 독자가 읽어주길 바라며 책을 만들고 있으면서 나는 정작 책 읽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모니터 속, 수 만자의 텍스트를 읽으며 지쳤다는 게 이유가 될까?

다행히 아이는 종이책 읽기를 좋아한다. 오늘은 서점에서 책을 읽고 있다는 딸아이를 만나 같이 들어가기로 했다. 평대나 서가에 있는 책을 슬쩍 갖다 읽고 도로 올려놓는 일은 하지 말라고, 서점에선 책을 사서 읽는 것이라고 단단히 일러두었다. 오늘도 읽고 싶었던 소설책 한 권을 사서 다 읽고 나오는 모양이다. 폐점시간이 조금 지난 무렵, 읽던 책을 손에 들고나온 아이는 다 읽지 못한 부분에 손가락을 끼운 채 차에 탔다. 손가락을 넣었다 뺐다 하더니 위쪽 귀퉁이를 살짝 접어 넣는다.

“엄마, 나는 이 보슬보슬한 종이를 만지는 느낌이 참 좋아요. 책장을 앞뒤로 넘길 때 나는 팔락거리는 소리도 좋고. 이젠 필기도 태블릿으로 하니 종이 손맛을 느끼는 게 정말 귀해졌어요.”

“엄마는 네가 차 안에 탄 순간부터 나는 냄새가 너무 좋다. 책 냄새 같기도 하고 나무 냄새 같기도 하고 잉크 냄새 같기도 하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게 참 좋네.”

우리의 마음을 채우는 향기

딸아이는 OO서점 향기라고 했다. 사람들이 OO서점에서 맡았던 향기를 좋아해서 디퓨저 상품으로 나와 판매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책방 냄새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용해서 상품이 개발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책방 냄새를 싫어해서 다른 향으로 덮어버렸다는 얘기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도 이 책 읽어보세요. 내가 다 읽고 빌려 드릴게요. 내가 읽으면서 와닿은 문장들에 표시도 해 놓았으니 엄마 생각이랑 비교도 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 때인가, 우연히 아빠의 책장에서 발견하여 대학 때까지 매년 한 번씩 읽었던 책이 있다. 청마 유치환이 짝사랑했던 정운 이영도 시인에게 보낸 편지를 묶어 출간된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이다. 책 맨 뒷장에는 매 학년 내 학번이 적혀있는데, 차곡차곡 학번을 적어 내려가는 재미가 있었다. 중학생 때 감상과 대학생 때의 감상이 같을 리 없으니, 그 책에는 서로 다른 필기구로 서로 다른 곳에 밑줄이 그어져 있었다. 밑줄이 없는 문장이 없을 정도였는데, 어떤 밑줄은 내가 왜 그 문장에 표를 해 놓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기도 했다. 어쩌면 책은 어느 시절 딱 한 번 읽고 말고는 그 안의 것을 다 알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 너랑 나랑 이 책에서 어떤 부분에 감동을 받는지 한번 비교도 해 보면 좋겠다.”

“엄마, 그런데 다 읽으면 나한테 꼭 돌려줘야 해요. 내가 메모해 둔 것도 있고 해서요.”

다시 돌아와 주길 바라는 마음

책을 돌려 읽다 보면 책에 대한 애정이 깊어진다. 마지막엔 내게 돌아와 주길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마치 살아있는 것을 대하듯. 틀어놓으면 저절로 시간이 흘러가는 TV나 이어폰을 꽂고 있으면 읽어주는 오디오북과는 달리 종이책 표지를 펼치는 데는 마음이 제법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그 책을 끝까지 아니 반이라도 읽어내려면 꽤 의지가 필요하다. 책은 온전히 내 의지로 내 마음이 움직여야 한다. 내가 주체가 돼야 첫 장을 열 수 있다. 천천히 읽든 빨리 읽든 그마저도 내 의지대로다.

차 안에 꽉 찬 서점 냄새를 고스란히 안고 오늘은 TV 리모컨 대신 종이의 손맛, 냄새, 소리를 총동원해서 책장을 펴 봐야겠다. 나의 의지로 넘기는 책장을 마주해 봐야겠다. 맘에 들면 밑줄도 그어보고 졸리면 소리 내어 읽어도 보자. 앞서 읽은 내용이 가물거릴 땐 몰래 커닝하듯 책장을 들춰보는 재미도 있다. 오감이 다 동원돼야 한 문장을 읽어갈 수 있다는 것은, 귀찮고 비효율적인 것이 아니라 내가 나의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사진 출처 : 무료 이미지 사이트 '미리캔버스'